2009.09.12, 첫째 날 #2

호치민에 도착했다.
역시 적도에 가까워진 만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확 더운 공기가 밀려들어온다.
이민국에서 입국수속을 위해 앉아있는 공무원들이 군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보고 공산주의국가에 왔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아, 그리고 물론 마스크도 하고 있는 걸 보고 신종독감 문제도. -ㅅ-;;

호치민에서의 체류 시간은 대략 23시간.
공항에서 시내까지 왕복하는 시간등을 고려하면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므로, 부랴부랴 짐을 찾고 공항을 나선다.
23시간의 경유라서 그런지, 서울-호치민, 호치민-방콕의 비행기를 나눠 타는 것으로 처리해준다.
따라서 수화물도 직접 찾아서 들고 나갔다가 다시 들고 들어와야 한다.


호치민 공항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다.
공항 출구는 가운데 출입구가 있고, 양쪽으로 환전소가 각각 4~5개 정도 있다.

환전은 모두 달러(USD)로 해왔기 때문에, 태국이든 베트남이든 일단 현지 화폐로 환전을 해야 한다.
당연히 공항 환전소는 환율이 좋지 않으니까, 급하게 쓸 돈만 만들자는 생각으로 $10를 꺼냈다.

우선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환전소를 죽 둘러봤는데...자신있게 호객행위하는 것에 비해 환율은 역시 형편없다.
그래서 저 멀리 왼쪽, 사진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쪽으로 갔더니 여긴 왠걸, 5%의 수수료까지 받겠단다.
저쪽에선 수수료도 안받으니까 좀 조정 해주삼! 이랬더니 싫댄다. -_-
그럼 나 저기 가서 환전한다? 이랬더니 가랜다. -_-;;;
바로 옆에 있는 곳에 갔더니 여긴 또 만 '동(VND, 베트남 화폐 단위)' 미만은 안주겠댄다.
아줌마 돈 덜줬어..돈 더줘야지! 이랬더니 얼마 안하니까 너 그런 잔돈은 안받아도 되~ 라면서 괜찮댄다.. -ㅅ-;;
이 동네 거 참 희한하네..

아놔 님 좀 짜증...궁시렁궁시렁 대면서 결국 제일 오른쪽, EXIMBANK라고 써진 곳에서 환전했다.
사진의 저 왼쪽 끝까지 왕복한 셈.
시작부터 공항을 가로질러가며 환전하는군..
그래도 덕택에 버스비는 벌었다. -ㅅ-;;


공항 출구로 나서기 전, 베트남 지도를 챙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너무 축척이 애매해서, 하루동안 돌아다니며 보기에는 좀 난감한 지도였다.
잠깐 눈요기 용도 + 더울때 부채용으로는 적당하다.


공항을 나서면 본격적인 호치민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
음...그래. 이 향기는 대략 남미의 페루와 비슷하군...-ㅅ-;
시큼한 매연냄새와 함께 약간 지저분한 공항 앞 풍경이 베트남의 첫 인상이다.
물론 한국보다 한참 남쪽이니만큼, 더운 것도 당연하고.
공항 건물도 미적인 면 보다는 기능적인 요소가 더욱 강조된 차가운 시멘트 건물인데다가, 군데군데 청소되지 않은 지저분한 부분도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다.


역시 더운 나라답게, 공항 길거리에서는 열대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자란다.
뭐..모양만으로는 야자수 내지는 그 친척정도 될거 같지만 정확한건 모르겠고..
그리고 그 아래 걸려있는 붉은 깃발에는 망치와 낫 문양이 그려진, 공산당 기가 펄럭인다.
저게 베트남 국기였나? -_-a


공항 바로 앞 차도는 마중나온 사람들, 혹은 택시 기사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리고 2개 차선 건너에 사진에서처럼 다시 보도블럭을 깔아놨는데, 여기가 택시 정류소, 혹은 버스 정류소로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욱 쫓아가다보면 바로 호치민 시내까지 데려다 줄 152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152번 버스의 탑승 요금은 3000동.
한화로 따지면 대략 200원 정도이다.
그러니까, 아까 공항에서 짐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약 20분동안 흥정하고 걷고 기타등등 노력의 결과로 400원을 절약한 셈이다.......음, 뿌듯해야겠지?;

아 물론, 지갑 두둑한 사람이라면야 버스따위보다는 택시타고 가는게 낫겠지만, 그렇게되면 못되도 $5, 약 6000원이 넘어간다.
가난한 여행객 입장에서는 어이쿠 감사합니다 하면서 냉큼 올라타야지.


그런데 뭐, 버스답게 바로 출발하는게 아니다.
탈 때 돈을 어디에 내야 할 지도 모르겠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가, 옆에 탄 한국인 여행자분과 인사하고, 창문 열고 매연을 들이마신다.
아..시큼해. -ㅅ-;
더우니까 창문닫고 있는 건 좀 어렵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기사 아저씨를 노려보며, 적어온 베트남어를 조합해 '언제 출발해여?'라고 물어보는 방법만 무던히 궁리한다.
베트남도 불교를 믿는 인구가 제법 된다고 들었는데, 기사아저씨 양 옆에도 불상과 무슨 부적같은게 있다.


한 10분을 기다렸을까? 안내양이 들어와서 돈을 내랜다.
와~ 드디어 출발하나 싶어서 호치민의 여행자거리이자 숙소가 위치한 '데땀(detham)'에 가냐고 물어봤더니 간댄다.
3천 동을 주고 건네받은 표.
몰랐는데, 나중에 표가 있는지 없는지 검사하므로 절대 버리면 안된다.
꼬깃꼬깃 가지고 놀았다가 검사하는 아저씨한테 건네줄 때 좀 민망했다. -ㅅ-;;


저것이 바로 호치민의 공항인 탄 손 낫(Tan Son Nhat) 공항이다.
오해하기 쉽지만, 분명 공항을 찍었다;; 나무를 찍은게 아니라구!! (초점은 일단 공항에 맞았음)

아참, 베트남은 언어는 '베트남어'를 사용하지만, 문자는 로마자 알파벳을 사용한다.
성조표시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낯선사람도 적당히 읽을 수는 있고, 덕택에 여행할 때는 편하다.


호치민 시내 건물들은 한국의 약간 번잡한 시골 정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대부분이 3층 미만의 건물들이지만, 간혹 서있는 최신식 건물들이나 거대 광고판등을 볼 수 있다.
지나가면서 본 포스코 광고.
그냥 이름만 같은 회사인가 싶었는데 광고모델이 장동건님이셨다. -ㅅ-a


그리고 롯데리아도 있었다. 의외로 한국 기업들이 많은 듯.
베트남 전역이 그렇다고 들었는데, 호치민에도 오토바이가 참 많았다.
거의 한 집에 오토바이 두 대는 있지 싶었다.

게다가 보면 알겠지만...도로에 차선이란게 없다. -ㅅ-;;;;;
그냥 뭐 오토바이들이 버스 사이에 끼고, 자기들끼리 겹쳐가는 도로인 셈.
중앙차선도 따로 없이 교통량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하고, 모든 운전자들이 싫어하는 신호등도 없으므로 상호 조정능력이 뛰어난 운전자를 양성하는 효과가 있을 듯...
그래서 모든 의사소통은 경적으로 하나보다. -_-;;;


어디서 내리는지도 모르고 어리버리하게 앉아있다가, 아까 인사했던 한국인 여행자분이 여기서 내려야 한댄다.
가이드북에는 안내양이 가르쳐 줄꺼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이 분 아니면 어이없이 엄한 곳에서 내렸을 듯.
덕택에 데땀 거리에서 내릴 수 있었다.


.....자, 내린 거 까진 좋은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
가져온 (무려 직접 만든) 수제 지도에서 현재 위치는 대충 찾긴 찾았다.
그런데 대략 낭패인게, 베트남 숙소의 주소를 적어놓은 종이와 태국 가이드북을 통째로 비행기에 놓고 내린 것이다.
아놔..이거 대략 낭패임ㅠㅠ이라고 울면서 일단 무작정 걸어간다.
아까 그 한국 여행자분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걸어가버린 뒤였다.


어쨌든 지도에 대략적으로 숙소 위치를 표시해놨으니 그 근처까지 가서 찾아보기로 한다.
데땀 거리는 여행자거리라는 별칭답게, 좌우로 늘어선 여행사들과 기념품 가게들 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매우 많았다.
가게 주인 정도만 베트남인이고, 식당이나 술집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애매모호한 지도만으론 숙소 위치를 찾기가 어렵다.
대충 기억나는대로 데땀 거리 옆을 대략 30분동안 걸으면서 헤멨는데도 도저히 위치를 모르겠다.
게다가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은 베트남 남자들은 '모또? 모또?'라면서 오토바이를 타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아니, 나도 어딘지만 알면 오토바이라도 타고 가고 싶은데, 문제는 여기서 걸어가도 5분이 안걸린다는 것만 알지, 주소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라고 한국어로 투덜투덜 대면서 한참 거리를 헤멘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거리를 건너는게 무섭다는 점이다. -ㅅ-;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신호등도, 차선도 없는 도로를 오토바이들이 마구 질주하고있는데, 그 틈을 뚫고 건너야한다.
농담이 아니라 네다섯 번 정도 도로를 건너려다가 두, 세 발짝 걷고는 다시 인도로 돌아와버렸다;;
다행히, 운좋게도 현지인 한 명이 건너길래 쫓아서 건너는 법을 배워 익혔다;;

걸어가다보니 Internet이라고 크게 써붙여놓은 PC방이 보였다.
그걸 보고 차라리 돈 내고 들어가서 찾아볼까...하는 생각에 조금씩 설득될 무렵, 가방 안에 담아온 아이팟 터치가 생각난다.
그래. 지금 있는 곳은 여행자거리, 즉 숙소와 외국인 술집, 레스토랑등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니 걸어다니다 보면 아무나 접속해서 쓸 수 있는 무선 인터넷 정도는 찾을 수 있겠지!
바로 가방을 뒤져 아이팟 터치를 꺼내고, 무선 인터넷 신호 사냥에 들어간다.
한국이라면 뭐, 거의 국가기간망급의 가용범위를 자랑하는 myLGnet이 있지만....베트남은 어딘가의 숙소에서 운좋게 암호걸지 않고 열어놓은 곳이 있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몇 걸음 걷지 않아 접속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정확히 어디에서 접속이 되는지 찾으려고 왔다갔다하면서 터치를 들여다보니....주변 현지인들의 매서운 눈길이 느껴졌다. 저놈 모하는거야..-_-;;;
인터넷 접속속도는 느렸지만, 관련 정보를 이미 2009thai.nik.kr에 정리해놨었기 때문에 금방 찾아서 주소를 메모지에 옮겨적었다.
오오 역시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되~ 라면서 숙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역시 숙소 위치는 한 번 지나갔던 거리에서 조금 안 쪽으로 들어간 골목이다. -_-;;;
이러니 못찾을 수 밖에..쩝.


숙소에 들어가서 짐 풀고, 가격협상도 마치고 발걸음도 가볍게 주변 구경을 나선다.
실제로 배낭이 하나줄었으니 가벼운건 당연하고. -ㅅ-a
그런데 나오자마자 느끼는 건, 정말 호객행위가 심하다.


데땀 거리 뿐만아니라, 호치민을 돌아다니는 내내 호객행위에 질리도록 시달리게된다.
굳이 말하자면 전 국민의 호객행위 생활화 라고 해야하나...-_-
아니 뭐 걸어가고 있는데 현지인이 말건다 싶으면 오토바이 타세요, 인력거 태워드릴까여, 날도 더운데 코코아 한 잔 어떠심?
....절세미녀가 와서 요청해도 됐다그러고 갈 판에 아저씨가 와서 뭐라 그러니, 당연히 '나 걷는거 좋아해요!'라고 후다닥 도망가버린다.

아니, 실제로 몸 멀쩡할 때는 풍경좋은 집 앞 산책코스를 하루 세 바퀴씩 돌고, 2시간 이내의 지하철 역은 걸어서 다녔다니까!!!(그래서 강남역에서 약속잡는걸 싫어했다...-_-;)
라고 한국어로 궁시렁궁시렁 댔지만, 당연히 호객행위 차단에는 효과가 없었다.
불러세울 때 마다 지친다는 표정으로 '나 제발 걷게 해주세요~'라고 해주자 그나마 더 치근덕대지는 않는 정도.


당연히 LG같은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들도 많다.
특히 지나가는 차들은 거의 대부분 도요타.
오토바이는 뭐..가끔 대림혼다도 보이더라. -ㅅ-;


그리고 무수한 호객행위를 고사하며 걷고 걸어 마침내 빈탄시장부근에 도착했다.
그 일대에선 가장 큰 사거리 정도가 되는 셈인데, 현지인들도 제법 많이 오는 듯 하다.
사진 왼쪽 아래의 아저씨는...오토바이에 기름을 저렇게 싣고 달리고 있었다;;;
아니 뭐 저러다가 사고나면 헬멧을 썼네 안썼네로 끝날 수준은 아닌거 같은데. -_-;;;

사실 저 정도는 흔한 편이고. -ㅅ-;;
심한 경우는 일가족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다니는 아저씨도 봤다.
아저씨 앞에 애기 하나, 그리고 아저씨 뒤에 꼬마애 하나, 그 뒤에 아줌마 하나.
일가족을 태우고 달리는 만큼 꼬마애까지 꼬박꼬박 헬멧을 씌워준 건 좋은데, 문제는 아저씨가 한 손에 음료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은 채 운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ㅅ-;;;;;;;
.......아저씨 전직 레이싱 선수라도 그러심 안되여..라고 한국어로 말해줬지만, 눈이 마주친 아저씨는 그냥 씩 웃고 지나갈 뿐;;

어쨌든 타국의 가정사 내지는 운전습관 문제는 접어두고, 사진 왼쪽에 있는 빨간 간판의 PHO 2000이라는 쌀국수 집으로 향한다.


퍼2000(PHO2000)이라는 쌀국수집이 유명한 건 그 맛 때문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다지 맛있다고는 할 수 없고, 그냥 그런 평균 수준이라는게 세간의 평이다.
하지만 이 가게가 유명해진 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이 가게에서 쌀국수를 먹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을 방문했던 2000년에, 클린턴씨가 와서 먹고 간 덕택에 유명세를 탄 것이다.
벽에 걸린 사진이 바로 그 때 당시의 사진.

저 사진 외에도 여기저기 관련 사진을 붙여놨다.
대신, 가격은 3만 동 정도로 비싼 편이라 손님은 많이 없었다.
그래봐야 2천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노점상에서 사먹는 쌀국수의 가격이 1만 동인 걸 감안하면 클린턴 방문 덕택에 세 배나 비싼 값을 받으며 파는 셈.

당연히, 맛있는 곳도 아닌데 여기 앉아서 다른 메뉴를 시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클린턴 아저씨 시킨 거로 그대로 가져다주셈! 이라고 말하자 쌀국수 한 그릇 냉큼 가져다준다.


실수였던게, 물티슈가 서비스인 줄 알고 생각없이 뜯어서 썼다.
베트남은 물티슈가 유료라는 말도 있고, 위생 문제도 있고 해서 한국에서 사갔었는데.
아니, 뭐 따지고보면 베트남에서 2천 동 내고 쓰는게 더 싸기야 하겠지만, 얼마 환전하지도 않아 절약해서 쓰고있는 현지 화폐를 이렇게 써버렸다는게 좀 아까웠다.
호치민에서는 숙소비용을 달러로 내도 되니까, 아까 공항에서 환전한 $10이 전체 여행 예산이다.

쌀국수 맛은...음, 뭐 한국에서 먹는 쌀국수보다는 훨씬 맛있었다.
취향에 따라 숙주나물(?)과, 파란색 이파리와, 채 썬 고추를 적당량 넣고 먹는다....인데, 일단 시간 없으니 후다닥 다 넣고 먹었다.
하지만 두 번째 와서 먹고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에는 더 맛있다는 쌀국수집에 가거나, 아니면 차라리 노점상을 이용할 듯.
그저 클린턴과 같은 메뉴를 즐겼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니까.


그리고 가게를 나와 바로 길 건너편의 빈탄시장으로 향한다.
빈탄시장은 1층짜리 건물 안에, 남대문시장처럼 각종 의류, 식품, 기념품, 잡화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건너는 길 너머 멀리 보이는 건물은 한창 건설중이었는데, 현대건설이라고 한글로 써붙여져 있었다.

빈탄시장에서는 기념품도 기념품이지만, 여행다니면서 가볍게 입을 셔츠와 바지를 구매하는 게 목적이었다.
뭐 내부는 남대문 시장과 큰 차이도 없긴 했지만...
사진도 한 장 제대로 못찍고 후다닥 나오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들어간 입구가 때마침 의류 관련된 상점들이 있는 곳이란 것까진 좋은데, 손님이 어지간히 없는 날이었나보다.
뭔가 살거 없나 기웃기웃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매장 점원이 다가오더니 팔짱끼면서 옷을 보고가랜다.
급 당황해서 팔 빼고 아니 나 그냥 구경하는 중이니까 됐다고 하고 후다닥 걸어가는데 그 꼴 보고 있던 다른 매장 점원도 팔짱끼고 덤빈다;;
이건 뭐 호객행위에 경쟁심리가 붙은듯한 느낌인데, 정말 다른 가게 점원들도 이쪽 쳐다보는게 매우 불안하다.
아놔; 정말 후다닥 다 뿌리치고 시장 가운데쪽으로 나오니 약간 큰 통로가 있었다.
혹시 뭐 잃어버린거 없나 다시 잘 점검하고, 당황한김에 옷사는 건 깔끔하게 포기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태국에서 사지 뭐. ㅠㅠ


그리고 향한 곳은 통일궁이다.
예전 베트남 자유정권 시대에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었지만, 공산당의 승리로 베트남전이 종결되면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지금이야 좀 빈티나는, 그리고 취향 떨어지는 구식 건물이겠지만, 베트남전 당시, 그러니까 1960년대 당시에는 최첨단 건물이었으리라.
물론 내부도 궁금해서 들어가려는데, 경비아저씨가 안된댄다.
왜 못들어가게 하는거삼? 이랬더니 건물 내부 관람은 4시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ㅠㅠ
흑...난 오늘 아니면 못보는데.
숙소 찾느라 헤멘 것과, 호객행위 하는 현지인들과 실랑이한 시간만 아니면 충분히 들어가봤었겠지만...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노틀담 성당으로 향한다.


대통령 궁 앞에는 이렇게 키 큰 나무들이 있는 정원이 있다.
노틀담 성당까지 가는 길목이라 외국인들도 더러 보이지만, 마실나온 현지인들도 많다.
데이트하는 현지인 커플들도 많이 보이는데, 각자 오토바이 한 대씩 세워놓고 벤치에서 이야기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_-;;

공원을 따라 걸어가는데 왠 현지인 아저씨 한 명이 자꾸 말을 건다.
역시 호객행위인가 싶어서 대충 대답해주고 지나가려 했더니, 끈질기게 말을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뭐 한국인인것도 알아챘는지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하지만 이걸로 방심하면 안된다.
아까 빈탄시장 근처에서 어떤 아저씨는 '나 한국인 친구 있어, 전화해볼래?'라며 휴대폰을 꺼내고 자기 오토바이에 태우려는 걸 보고 도망쳤었거든;;

그런데 보아하니 이 아저씨는 오토바이 끌고 나온 것도 아니고, 자꾸 말 거는데 매몰차게 지나가버리기도 어렵고 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눠봤다.
알고보니 자기 여동생이 곧 한국의 병원으로 일하러 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날씨는 어떻느냐, 아 그래? 두꺼운 옷 준비해야겠네.
한 달 방값은 얼마나 내야하지? 아...비싸구나. 그래서 친구랑 같이 잘꺼라던데.

등등등 이야기를 나누다가, 난 호치민에 하루밖에 못있는데, 보고싶은게 많아서 좀 바쁘다, 궁금한게 있으면 나중에 이메일로 물어보거나 낼 아침에 숙소로 찾아오셈~ 이라고 이야기해줬더니 그렇게 하겠단다.
정확히 기억 안나는 숙소 위치와 -_-;; 정확한 이멜 주소를 적어주고 다시 노틀담 성당으로 걸어간다.


통일궁과 노틀담 성당 주변에는 호치민에서 보기드문 신호등이 있다. -ㅅ-;
그래서 지나가던 오토바이나 차량들이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길을 건너기도 쉽다;;


옆에서 본 노틀담 성당 모습.
노틀담 성당은 1800년대에 프랑스 식민시절 세워졌다고 하는 건물이다.
주춧돌 하나, 벽돌 하나를 전부 프랑스 본국에서 가져와 프랑스 양식대로 지은 건물이며, 베트남 전역, 아니 인도차이나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건물이라고 한다.


물론 현재도 관광지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이 직접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갔을 때는 문이 잠겨있어서 내부까지 들어가보진 못했다.
더군다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하늘이 점차 꾸물꾸물 짙은 회색으로 변하고 있어서 서둘러 오늘 안에 필수 코스를 돌러 이동해야했다.

덕택에 노틀담 성당 뒤쪽으로 보이는 녹색의 건물, 다이아몬드 플라자는 과감하게 생략.
한국 자본으로 지어진 베트남의 초거대 쇼핑몰이라고 하는데.....뭐 시간이 없다면 굳이 가 볼 필요는 없을 듯.


조금 걷다보니 인민위원회 청사 근처에서 명품 부띠끄 매장이 밀집한 곳을 봤다.
호치민 광장 옆의 저 곳은 루이비똥..-ㅅ-a;;


그리고 그 바로 옆에서는 호치민에 대한 소개가 있는 작은 광장 / 거리가 있었다.


안에 들어가보면 호치민에 대한 설명들이 있다.
로마자 알파벳으로 씌여있긴 하지만...베트남어라 읽을 수가 없으므로 걍 훑어보고 나와버린다;


그리고 옆으로 나오면 호치민 동상과 인민위원회 청사가 있다.


호치민이야 뭐, 말 할 필요없이 베트남 근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오죽하면 도시의 이름까지 사이공에서 호치민을 기리기 위해 호치민 시로 바꿨을까.

그는 프랑스 식민시절에 인도차이나 반도의 해방을 위해 힘쓰고, 베트남의 민족주의를 강조했으며, 베트남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앞선 인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가 공산당, 즉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이다.

사실 식민시절 당시의 베트남 상황은 한국과 비슷한 면이 많다.
한국은 한반도에서 남북으로 긴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오른쪽 끝 부분에서 남북으로 긴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 미국 등의 열강에 의해 국토를 유린당하다가 일본에게 넘어갔으며,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치하에 있다가 일본에게 점령당한다.
그리고, 두 나라는 모두 일본의 패망과 함께 독립의 기회를 갖게 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36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북쪽은 소련의 지지를 받는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고, 남쪽은 미국의 지지를 받는 (친일) 공화국 정부가 들어선다.

2차대전 당시, 베트남을 통치하던 일본에 맞서기 위해 미군과 협력하여 중국과 베트남에서 게릴라 전술을 펼치던 호치민은 마침내 하노이에 입성하고, 베트남의 해방을 선포한다.
그리고 베트남도 마찬가지로,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16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게 된다.

차이점이라면, 당시 남한에 들어선 해방정부는 친일파 세력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호치민은 뼛속까지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16도선 북쪽을 중국에게 넘겨줘버렸지만, 16도선 이남 역시 프랑스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싸운 나머지 프랑스군에게 침입 및 점령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이분되었던 한국과는 달리, 베트남은 사실상 삼분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리저리 복잡한 관계 끝에 한국은 현재의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지만, 베트남은 통일 국회, 통일 선거와 함께 통일정부가 이루어졌다.
호치민은 비록 통일 정부의 완성을 직접 지켜볼까지 생존하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뜨긴 했지만, 전 과정에 걸쳐 그가 이룩한 베트남의 자립에 대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덕택에, 호치민이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뭐 어찌되었든 대한민국 윗분들은 친일파 청산같은 문제는 별로 해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니, 해결이야 언제나 하고 싶어하지. '자 우리 이제 가슴아픈 과거는 잊고, 다함께 손잡고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운운'
이런 생각은 접어둔 채, 베트남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곳으로 향한다.
슬슬 빗방울도 떨어지고 있기 시작한데다, 밥 생각이 별로 없으니 역시 만만한 아이스크림을 선택한 셈.


껨박당이라는 아이스크림집이 바로 그 곳이다.
윗 사진과 아랫사진이 모두 같은 가게인데,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있다.
당연히, 윗 사진에 나온 파란 간판 달린 곳이 에어컨이 나오기 때문에 그리로 들어갔다. -ㅅ-;



영어 메뉴가 있어서 손쉽게 적당해보이는 걸로 시켰다.
이 아이스크림 하나가 5만동이다......-_-a
현지인 다섯 끼 밥값에 해당하는 셈.

뭐, 덥기도 했지만 아이스크림 자체도 매우 맛있었다.
지나치게 단 것도 아니고, 아이스크림 및 과일들의 맛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잘 보듬어주는 그런 시원한 맛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재료에 열대과일만 없었으면 한국에 수입해다가 팔고 싶을 정도. -ㅅ-a


어느새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지나가던 오토바이들 역시 우비를 입고 달리기 시작한다.
착하고 동체시력이 좋은 사람은 위 사진에서 우비 입은 사람을 구별해 낼 수 있어요..........-ㅅ-;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차도 두 잔이나 리필해서 마셨는데도 여전히 비가 그치질 않는다.
잠깐 비가 뜸해진 시간을 틈타 건너편으로 건너간다.


이쪽에는 고급 상점가인지, 루이비똥, 돌체&가바나, 아르마니 등의 명품 매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루이비똥의 DP가 그나마 낫길래 찍어본 사진.
다른 매장은...그냥 한국 동대문 시장 마네킹이 비싼 옷 입고 있구나~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비가 그쳐서 다시 길거리로 나서 강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쪽에는 고급숙소들도 제법 많았다.
도어맨 있는 호텔들도 있고, 투숙객이 나오면 택시도 잡아주고 짐도 날라준다. 당연히 픽업도 나오겠지.
..뭐 새삼스레 낮동안 열씨미 헤멨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여행이 너무 편하기만 한 건 싫어서..-ㅅ-;


사진을 찍고 죽 강까지 내려오기까진 했다.
무려 왕복 6차선 정도의 베트남식 교통혼잡을 자랑하는 대로도 성공적으로 현지식(즉, 무단으로) 횡단하는 것 까지 성공했다.
그런데 한강처럼 강변을 따라 걸어갈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건 실수였다.
그쪽에는 선착장이 있을 뿐, 강변 산책로나, 하다못해 강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도로도 없었다.

결국 그냥 천천히 숙소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앞뒤로 스쳐가는 오토바이 불빛들이 매섭다.
간혹가다 보이던 외국인 여행객들마저 사라지고, 지겹게 달라붙던 호객행위마저 사라진 순간 어느새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었음을 깨달았다.
분명히 길을 잘 따라오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남서쪽으로 가고 있어야 할 방향이, GPS에 의하면 남동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쩐지 거리명이 지도에 나온거랑 자꾸 다르더라...라면서 현실을 깨닫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제법 난감한 상황이었다.

혼자다니는 여행인만큼,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카메라는 가방에 넣고 꺼내지도 않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서있는 곳은 완연한 현지인 거리다.
한국에서 찾아온 어리버리한 여행객 하나는 길거리에 서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 곳이며, 실제로 저만치 모여있는 베트남 젊은이들은 오토바이 스로틀을 당기면서도 이쪽을, 아니 사실은 두둑한 현찰을 들고다니며 경찰에게 따져봐야 별 좋은 대접 못받을 여행자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음. 아무렇지 않은 척, 근처 상점에 들어가서 물 한 병을 산 다음, 우선 방향을 남서쪽으로 틀었다.
그런데 입구에서만해도 제법 많은 차량들이 드나드는 길처럼 보였던 곳이, 들어가면 갈수록 마치 주택가 같은 느낌이 들면서 현지인들 마저도 점차 뜸해지는 것이다.
뭐...아래 속옷만 입은 현지인 아저씨들이 거리낌없이 골목을 돌아다니거나, 집 앞 대청에 누워서 TV를 보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나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혼자다니는 여행객은 당연히 긴장한다.
'와~ 현지인 생활상을 이렇게 보게 되니 재밌네~'라면서 외국인 여행자들이 사라지고 혼자 뒷골목으로 걷기 시작한게 어느새 두 시간째.
나름 여행다니면서 위험한 짓 안하고 잘 돌아다닌 덕에 강도나 소매치기당하는 일은 없었는데, 왠지 오늘로 그런 진귀한, 그리고 달갑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되지 싶었다.
후다닥 큰 도로로 나와서 태국에서 믿을만하다는 브랜드의 택시를 보는 순간, 일단 돈 몇 푼 보다는 안전한데로 가자는 생각에 택시를 불러세우고 만다.

결국 택시에 타자마자 숙소까지 바로 직행하고, 침대에 몸을 뉘인다.
그래도 매우 늦은 시간은 아니어서, 다시 일어나 숙소 주변 거리를 살짝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외국인들 구경도 하면서 적당히 시간을 때운 뒤, 콜라와 물 하나씩을 집어들고 방으로 돌아온다.
정말 진땀 빠지는 경험 몇 번 하고나니 오늘이 과연 여행 첫째 날이 맞나 싶을 정도로 피곤하기에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워 잔다.

태국은 별달리 조사 안하고 가이드 북만 믿고 있었는데, 과연 잘 갈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을 몇 번 하다가 '에라 될대로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잠이 든다.

내일은 드디어 태국으로 간다.
가이드북은 베트남 항공기 어딘가에 놓아둔 채로.

참, 돌아온 뒤 구글맵으로 확인한 헤멜 당시의 위치는...정말 암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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