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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제일은행에서 기분 상한 사건

2009. 1. 20. 23:32
인터넷에서 두드림 통장이란 녀석에 대해 접했다.
뭐, 필요할만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테고, 아니면 검색은 알아서.

다른 건 둘째치고, 전 금융기관 ATM 출금 수수료 무료라는 부분때문에, 같은 용도로 쓰고 있던 HSBC 계좌 대신에 써볼까 싶어서 만들어볼까 했다.
HSBC가 좀 더 많은 ATM기기를 지원하지만, 결정적으로 지금 OTP를 분실해서..-ㅅ-;;

점심 시간에 밖에 나온김에 회사 근처의 SC제일은행에 가서 신청서를 썼다.
늘 그렇듯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적고 사인했더니 상담하시는 분이 물어본다.

"직장 주소는 안쓰셨네요?"
"아..뭐 집 주소 있는데 써야하나요?"
"그래도 써주셔야하는데..회사원이시죠?"
"네."
"회사가 이 근처신가봐요?"
"그렇죠."
"직장인으로 신청하면, 주소 없이는 입력이 안되요."
"음...그럼 무직으로 해주세요 뭐"

학교다닐 때 만들었던 통장이 하나 있어서인지, 직장주소는 안들어가있나보다.
뭐 굳이 개인정보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고 싶지도 않고, 대출받으러 온게 아니라 예금하러 왔으니 무슨 회사 다니고 있는지까지 전산기록에 남기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다 고객 분석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때 쓰일텐데 뭐.

그리고나서 신분증 복사하겠다고 들고가더니 소식이 없다.
공교롭게도 앉아있는 자리가 다른 상담실 옆이라 그런지, 옆에서는 다른 아줌마가 상담원과 수다떠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뭐 내용 자체는 지하철 잡담과 다를바 없는데, 가끔 나오는 돈 얘기 단위가 백만~천만원대 정도라는게 차이점 정도.

잠깐 기다리다가 따분해서 터치를 꺼내 소설책을 읽고 있으니 몇 분 정도 뒤에 종이를 들고 돌아오신다.
간 김에 다른 업무라도 보신건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리플릿 하나를 꺼내며 하시는 말씀.
"고객님 제가 담당자에게 물어봤는데, 이번에 고객 확인 제도가 강화되어서 계좌 발급할 때 필요한 정보들이 많아졌어요."
"네?"
"고객님의 직장 이름과 주소, 소득 수준같은 자료가 없으면 신규 계좌 발급이 거부되세요."

순간 '아니 그러면 직장없는 가정주부들은 계좌도 못만든다는 소리고, 내가 백수라면 제발 계좌 만들어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소리냐'라고 울컥 했으나, 뒤이어 혹시 억지로라도 직장 정보를 가져가려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죠. 다른 지점 가서 만들어야겠네. 신청서랑 다 제가 가져갈께요."
"아니...직장 주소를 적기가 귀찮아서 그러시는거라면, 직장 정보를 알수있는 걸 주시면 제가 알아서 입력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거의 정확한 대사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한 마디로 명함 달라는 걸 길게 말하기에 기억하고 있음)
"아뇨, 직장 주소를 굳이 적고 싶지 않으니, 그냥 다른데서 만들도록 할게요."
"고객님. 직장 근처처럼 연고지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발급이 어려우실 수도 있어요."
"그럼 집 근처에서 만들면 되겠네요. 집 근처 제일은행 지점에서 만들께요. 신청서 주시겠어요?"

그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어느새 2시다.
허 참, 기다리는 시간 포함해서 대략 20~30분정도를 은행에서 쓰고, "직장과 연봉을 공개하지 않으면 계좌를 만들어주지 않겠다"라는 대답을 들었다니.

왠지 열받는 느낌이라, 회의 들어갈 때 까지 시간이 있길래 인터넷을 뒤져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일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강화된 고객 확인제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역시나, 고객의 이름, 주소, 연락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지, 그 어디에도 '직장 주소, 이름, 소득 수준에 대한 정보가 필수'라는 내용은 없었다.
신청서에 이미 이름, 주소, 핸드폰 번호를 적어줬는데, 직장주소까지 추가로 필요하다는 내용은 없었을 뿐더러, 소득 수준까지 필요하다는 건 대놓고 개인정보를 내놓으라는 소리처럼 들리는게 사실이지.
뭐, 대출이나 신용카드 신청이라면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제일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간김에, 회사를 위해서 개인정보를 요구한 행원님의 노력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들어, 후다닥 시간과 지점을 적어 고객의 소리에 남겼다.
이미 기분은 제법 많이 상한 상태였지만, 과연 어떻게 대응하나 궁금하기도 했고.
사실, 기다리는동안 옆에서 잡담하던 아주머니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바로 '시정하겠습니다'가 튀어나갔을 것이라는 걸 의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평잔 10만원이 안되는 계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칭얼대면 정말 "알았으니 됐거든"이라는 반응이라도 보여줄지, 아니면 역시나 평소대로 '무시한다'를 선택해줄런지.

가장 기분이 상했던 부분은, '고객 상담'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의 입에서 '서비스를 거부'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이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서비스 거부라는 건 회사 입장에서 고객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적대적인 방법 중 하나니까.
더군다나 고객이 자기 돈을 들고와서 맡기겠다고 하는 경우 아닌가.
대출이라면야 신용도를 이유로 들어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배가 불렀으니 푼돈은 필요없어라는 식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인데.

대출이야기가 나온김에, 몇달 전 잠깐 대출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ㅅ-;; KB국민은행에 갔다.
역시나 회사 앞에 있는 국민은행이었는데, 대출상담한다는 분이 신분증을 달라고 하더니 뒤이어 하는 말.
"저희 고객은 연봉 XXXX만원이하이신 고객님께는 대출이 어렵습니다."
타고난 외모가 없어보인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게 과연 상담원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아마도 신분증에 있는 나이 및 기타등등 정보를 보고 한 말인지, 아니면 역시나 평균잔액을 조회해보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음, 그래요? 이상하네. 급여계좌가 국민은행으로 되어있을텐데..입금 내역같은거 확인해보시죠."
바로 상담원 얼굴은 아차 싶은 기색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미 국민은행에서 대출받아야겠다는 생각은 건너편 대륙으로 떠난 뒤였다.
물론 그 뒤로 국민은행 평균잔액은 30만원 이하를 유지하도록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하고있는 중이고.

이번 제일은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추측컨대, 상담하시는 분은 고압적으로 살짝 겁을 주면 직장 정보나 소득 수준 같은건 쉽게 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 덕택에, '다른 지점에 가서 만들겠다'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본인 스스로 했던 말, 즉 '직장 정보가 없으면 발급 거부된다'라는 이야기를 뒤집을 수가 없으니 붙잡을 수도 없었을테고.

그런데 놀랍게도, 제일은행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고 한 두시간쯤 지나자 해당 지점장이라는 분께 전화가 왔다.
허, 생각보다 빠른데다 즉각적인 반응에 제법 놀랐다.
애초에 이런 문제는 해당 은행의 전반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상담 창구 직원의 개인적인 실수인셈이니, 전화 한 통으로 나쁜 이미지가 자리잡기 전에 해결하는 것이 맞겠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빠를 줄이야.
공교롭게도 회의들어가는 시간과 겹쳐서 나중에 다시 전화해주시기는 했지만, '무반응'까지 기대하고 있던탓일까, 빠른 대응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뭐 어쨌든, 그래서 오늘의 교훈은...트랩을 깔려면 뒷수습도 고려해서 잘 깔자? -ㅅ-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