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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 두 마리.

2009. 7. 28. 00:43
지난 주말 밤, 돌어오는 길에 아파트 옆 동 입구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봤다.
하얀 배에 노란 등딱지, 주인없이 풀밭 위를 걸어가는, 이른바 길냥이 두 마리.

보통 길냥이들은 한 마리씩 다니거나, 어미 고양이 한 마리와 새끼고양이 여럿이서 몰려다닌다.
하지만 그날 봤던 고양이 두 마리는, 특이하게도, 아직 1살이 되려면 두어개월 남은 듯한 고양이 한 마리와, 그보다도 더 작은 아깽이 한마리가 몸을 꼭 붙인 채 - 아마도 인간으로 치면 손을 잡고 가는 것일까나 - 걸어가다가 딱 눈이 마주쳐버렸다.

눈이 마주친 대상은, 15층짜리 건물크기의 생물이다.
고양이의 신장을 고려해보건대, 대부분의 인간은 7~10층 정도의 건물 정도의 위압감으로 느껴질 것이다.
고양이가 특히 작다거나, 인간쪽이 평균보다 큰 쪽에 속한다면 그 차이는 더더욱 커질테고.
게다가 고양이는 시선에 반응할 줄 아는 생물이다.
길 건너에서 걸어가던 15층 크기의 생물이 느닷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리라.
굳이 비교하자면, 사우론과 눈싸움하는 호빗의 심정? -ㅅ-a

형제자매 조합의 하나일 것이라 짐작되는 이 한 쌍 중, '괴물을 만났을 때 상식있는 고양이의 대처법'을 실천한 것은 당연히 나이 많은 쪽이다.
바짝 털을 세우고 맹렬히 적의를 표현하는 나이많은 형, 누나, 혹은 언니 옆에선, 아직 멋모르는 동생이 삐약삐약 작게 울면서 오히려 달래려는 듯 하다.

선선한 여름 밤, 산책중인 선량한 고양이 두 마리를(어쩌면 한 마리만을) 불안에 떨게 만든 모든 악의 근원, 만화의 씨앗, 눈치없는 괴수는, 짧은 연극에서 자신이 맡은 악역의 위치를 재빨리 깨닫고는 무대를 지나 뒤로 퇴장한다.
혹시나 운 좋게 가방 속에 소시지 한 조각이 있어서 친해질 수 있었을까, 따위의 가망없는 망상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종족적 적대감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반목이 계속되는 그 틈에도 타인을, 혹은 다른 생물체를 재미로 상처입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멸치 하나 따뜻하게 건네 줄 사람을 만나는 편이 오히려 현실성 있을테니, 차라리 그 쪽을 기도해준다.

그리고, 괴물의 마수에서 벗어난 작은 고양이는 세상 사는 법 하나를 형, 누나, 혹은 언니에게 배울지도.
"저런 거랑 놀면 안된다니까. 바보병이 옮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