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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종교와 문화의 상상력! 터키 #3

2010. 12. 14. 00:51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온다.
편안한 숙소든, 안좋은 숙소든, 아침해는 차별하지 않으니까.
패키지 여행인데 이런 숙소에 묵는단 말이야! 라는 불평을 자기 전에 했던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드는 생각도, 씻으면서 드는 생각도 한결같다.
궁시렁 궁시렁 -_-;;;

어쨌든 씻고 나와서, 밥을 먹으러 내려간다.


어허허...식당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사진에서 빠진 거라면 빵 정도? -_-;;;
빵에 올리브, 치즈 약간 주워먹고 나왔다.
엔간해선 음식투정 안하지만, 한 번 박힌 미운 인상은 "음식도 싸구려일꺼야~ 랩 씌워둔 거 보면 식당에서 하루 재워둔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아침 먹고 숙소 앞에 돌아다니다 발견한 멋진 앤틱 벤츠.
무려 실제로 몰고다니는 차량인 듯 하다.
차에 별로 욕심은 없지만, 손질 잘 된 이런 차를 보니 왠지모를 부러움이 든다.
얼마나 관리를 잘 하고 차에 애착이 있었으면.....

애초에 남들 밥 먹을 시간에 일찍 먹고 나와서 둘러본 거라, 주변을 많이 돌아보지도 못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자유 여행이었다면 근처 다른 식당에 가서 현지식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느긋하게 (아침부터!) 맥주 한 캔 했을지도 모르지만...-ㅅ-;;


어쨌든, 아침에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한국 공원이다.
한국전 당시 터키의 참전에 감사하며, 한국 정부에서 터키 국민들에게 증정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터키에 대한 호칭이 "토이기" 였기 때문에, 보는바와 같이 한국 참전 토이기 기념탑이라 씌여있다.
위에 뺴곡하게 적힌 내용은 당시 참전했던 터키 청년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전사월일이다.


기념탑은 다보탑의 형상을 본 따 만들어졌다.


탑 아래에 있는 비석에는 한국의 묘소에서 가져 온 흙들이 위처럼 안정되어 있다.
이렇게나마 고국에서 쉬시라는 의미겠지.



다시 생각해보면, 총 대신 마우스를 쥘 수 있는 것도, 탄광에서 곡괭이질 하는 대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수 있는 것도, 크건 작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도움인 게다.
당시 우리나라의 원조는 그런 이념보다는 국가차원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루어진 것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선거때만 봉사한다는 국해의원, 정치가들에게 할 이야기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직접 포탄 사이를 뛰어다니고, 총에 맞아 피흘렸을 사람들, 그 분들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과연 그렇게 말 할 수 있을까?
당신의 희생은 그저 대통령의 기분전환과 경제적 원조를 위해서라고 말 할 수 있을거라고?

당신이 딛고 있었던 땅에서, 60년 후의 아이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게 해준 데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이, 당신의 소중한 미래와 희생 덕택에, 비교할 수 없는 가능성이 피어날 수 있었다는 치하의 말조차 오히려 부족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사하는 것은 정치 기구나 어느 지위의 대표자가 아닌, 여기에 이름적인 개인 한 명 한명이다.


원래 한국공원 설비가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최근 6.25 발발 60주년을 맞이해서 한국의 높다는 양반들이 온다고 해서 정비했댄다. -_-;;;;
공원 안에 전봇대가 있었으면 뽑을기세로구만;;;


자, 그리고 패키지 여행의 특성상, 들어가지는 못한채 저 멀리서 구경만 했던 아타투르크 기념관이다.
이스탄불에서의 돌마바흐체 궁전도 그렇고, 앙카라의 아타투르크 기념관도 그렇고..왜 패키지 여행은 이렇게 가보고 싶은 곳을 조금씩 빼먹는걸까 ㅠㅠ

아타투르크 기념관은 무스타파 케말, 혹은 케말파샤라고 알려진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기념하여 만든 건물이다.
사진에서는 좀 작아보이는데, 실제 건물은 엄청나게 크다.
당연하지만, 국민을 능멸하는데 있어서 (동성의 대통령이 아무리 본받으려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디의 초대 대통령과는 국민의 존경과 관심의 정도가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 여기에 걸맞을 듯.

못 들어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한국에서 봤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에 대한 내용은 이런 기념관이 생긴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원래 이 대통령의 이름은 그냥 "무스타파"였다. 뭐 터키에선 매우 흔한 이름중의 하나;;
이래저래 복잡한 가정사 덕택에 어린 나이에 집에서 나와 간 곳은 역시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시켜주는 군사학교.
그리고 자연스레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이 된다.
학교 다니던 시절 성적이 좋았는지, 그 때 별명처럼 붙은 게 "케말"이라고 한다. 터키어로 완벽이라는 뜻이래나..

당시 터키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거의 막바지 시기였는데, 당시 왕이라는 작자가 설치류 근성이라도 있는지, 돌이킬 수 없는 악수를 두고 만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쪽에 서서 참전한 것.
뭐 방법이 없으니 이 사람도 전장에 섰는데, 케말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기저기서 뛰어난 업적을 거두고, 장군직에 임명되게 된다.
바로 이 "장군"이라는 직위가 터키어로 "파샤".
그래서 케말 파샤를 그대로 번역하면 완벽 장군님...-_-;;;
하지만 장군님 노릇 하던 잘 나가시던 분이,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왕정 제도를 반대하고 나선 탓에 대번에 해임되고 범죄자로 쫓기게 된다.
한국으로 따지면 쇠고기 수입 반대, 부자 감세 반대 등등으로 부족해서 정권 퇴진을 요구한 셈이나 마찬가지.

멍청한 짓하면서 자기 배 불리기 바쁜 정부가 꼴까닥, 나라 말아먹고, 독일의 패망과 함께 터키도 이내 다른 나라에게 합병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때 다시 터키 군에 합류해서 독립전쟁을 지휘하고, 한 때 서울시 정도로 줄어들었던 터키의 영토를 남한의 8배 정도인 지금 크기로 회복한 주역이, 바로 이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다.
당연하지만 구국의 영웅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 이 사람이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왕에게 임명받은 장군의 신분으로 왕정제에 반대했던 무스타파 대통령, 취임즉시 개혁안을 선포하고 터키 대개조에 나선다.
오스만 투르크 시절까지만 해도, 터키는 제정일치의 칼리프 제도, 즉 이슬람 국교의 최고 지도자가 곧 국가의 정치적 최고 지도자였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자연스레 제정 분리가 되는 것과 동시에, 터키에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고 비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차별을 없앴다.
또한, 이슬람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표 아래, 일부다처제 금지,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 금지 등을 선포하고 강력하게 추진한다.
뿐만아니라 여성의 참정권도 인정하게 되는데, 이는 유럽의 선진국가들보다 훨씬 앞서서 실시한, 특히 이슬람 문화권이란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개혁이다.
더욱이, 당시 아랍문화권의 칼질해놓은 듯한 문자(...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된다) 대신, 터키언어에 맞는 알파벳 기반의 문자를 만들고 공식 터키 문자로 채택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의 이름이 그냥 "무스타파"라고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당시 터키에서는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이름, 혹은 이름과 별명만 사용했다.
하지만 이 초대 대통령이 성씨 사용법을 추진하고 통과시키면서, 터키 사람들도 성씨를 저마다 하나씩 만들어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초대 대통령의 성씨는 직접 만든게 아니다.
터키 의회에서 무스타파 대통령의 업적에 감사하면서, 만장일치로 '아타투르크'라는 성씨를 만들어 대통령에게 선사한 것이다.
지금도 터키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불리우는 아타투르크라는 단어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성씨를 가진 혈족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독립전쟁 당시 아내를 잃었던 이 무스타파 아타투르크 대통령은 그 뒤 재혼하지 않았기 때문.
말년에 양녀를 한 명 들이긴 했지만, 양녀라는 부분은 둘째 치더라도 여성의 성씨는 세습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아타투르크는 성씨이면서도 고유명사가 된,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 대통령을 기리는 단어가 된 셈이다.

온 국민의 추앙받던 터키의 초대 대통령에게서 본받을 점은, 권력자의 위치에 선 뒤에도 부패하지 않았다는 점 아닐까?
당시의 기득권자였던 이슬람 세력은 글자 그대로 뒤통수 맞은듯한 느낌과 함께 대통령을 맹비난하기도 하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절부터 쌓아온 부로 회유하려 시도했겠지만 꿋꿋하게 지금의 터키 모습을 완성한 대통령의 모습은 그야말로 정치인의 귀감이라 할 만 하다.

진심으로,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 대통령의 동상을 크게 만들어서, 어느새 투견장으로 바뀐 청와대 한가운데에 세워두고 싶은 심정

자, 들어가보지도 못한 건물 앞에서 혼자 중얼거렸던 내용은 뒤로 하고, 또 버스에 올라 부지런히 터키 남쪽으로 향한다.
아침에 한국공원 달랑 보고 나와서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향하는 목적지는 카파도키아!
.....물론 이대로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볼만한 곳에 한 번씩 들른다.


첫 번째로 멈춘 곳은 소금호수!
아, 소금호수라길래 볼리비아의 우유니!!!를 떠올리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난 우유니도 다녀왔다구! 라면서 버스에서 내린다.


......뭐임? 이거 나랑 장난하자는거임?;;;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냥 화장실 하나, 1층짜리 상점 건물 3~4채 정도를 세워두고 "자 여기는 소금호수에요~"......라고 합니다. 허허;


그나마 좀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니 봐줄만한 광경이 나온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연출이라는거;;;
실제 광경은 저 제일 윗 사진에 근거한다는 거....;;;
다른 사람들도 별 감흥없이 한 번 보고, 사진 찍고, 걸어들어온다. -ㅅ-;;;

아, 나의 소금호수는 이렇지 않아!! ㅠ_ㅠ

그 다음에 나와서 향한 곳은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데린구유이다.

그냥 별 거 없는 이런 시골 동네의 지하에 엄청난 땅굴 도시가 숨어있다.
데린구유는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었던 곳이다.
옛날 로마 시절에 천주교 탄압 정책에 의해 잠깐 숨었다가, 히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잠깐 풀리긴 했지만 이내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면서 다시 숨게 된 곳이라 한다.


그냥 동네 창고같은 저 문으로 들어서지만, 그 밑에 있는 지하도시의 실체는 꽤 크다.
괜히 "도시"라고 불리울까.


지금이야 중간중간에 앉는 장소로 이용되지만 예전에는 빨래터, 혹은 식품 저장소로 쓰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마굿간이었을 수도 있다.
입구 가까운 곳에는 실제로 마굿간으로 쓰였다는 넓은 공간도 존재한다.



이 곳에 이렇게 거대한 은신처가 생길 수 있었던 건, 땅굴을 파기 쉬운 재질의 암석으로 지반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그래도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이지, 돌로 만들어진 지하 도시라는 건 여전하다.


게다가 폭은 얼마나 좁고 천장은 어찌나 낮은지.
평균  체형의 한국인조차 움츠리고 허리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뭐...은신처니까 군데군데 통로가 좁아야 한다는 건 이해하는데...;;;
하긴 입구쪽에는 심장마비,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란 경고 팻말도 세워져 있었지;


내부는 이렇게 조명시설을 다 갖춰놔서 전기불은 들어오는데, 그래도 워낙 천장이 낮다보니 사람 그림자에 가려질 때도 많다.
마침 조명등 하나를 챙겨가서 유용하게 썼음.


여기저기 통로가 막혀있고, 또 관광객들에게 모두 공개하는 건 아니다보니, 나왔던 통로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다른 관광객들이 통로를 지나고 있다면 꼼짝없이 서서 지하도시 탐방 행렬이 끊어지길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입구와 출구는 다르게 되어 있다.
이 곳은 출구. 아이고, 정말 파란 하늘이 반갑더라 =ㅅ=;;


고양이님 사진찍으려다 바쁘게 어딜 걸어가시는 모습밖에 못찍었다.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시는 거 보니 뭔가 먹으러 가시는 모양.
물론 밥 때가 되서 배가 고프다보니, 고양이님 발걸음에 감정이입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이렇게 생긴 식당으로 간다.
지하도시를 본딴건지, 석굴 안에서 밥을 먹는 식당이다.


당연히 탁자도 돌 탁자.


음...뭐 메뉴는 항아리 케밥이라는데, 얘기로만 들었던 항아리 케밥이 이거였어? 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외로 좀 시시했다;;
딱히 다른 현지식들에 비해 다른 점도 모르겠고. -ㅅ-a
이 패키지 여행에선 의외로 음식 경험이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다. ㅠㅠ

대충대충 밥 때우고 다시 버스에 올라 가다가 다시 잠깐 멈춘다.


바로 이런 낙타모양의 바위가 있는 하멜 계곡.
오, 신기한데?
주변을 돌아보면 이렇게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이 잔뜩 있다.
왠지 모르게 바위로 로르샤흐 테스트 하는 느낌? -ㅅ-a;;


게다가 오늘은 하늘도 파랗게 빛나고 있다보니, 그야말로 눈 닿는 곳 마다 서로 절경임을 내세우며 뽐낸다.
관광나온 한국인들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쁘고.
이렇게 좋은 날씨에 이 곳에 오는 것 또한 대단한 행운이라고 여겨질 만큼, 멋지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


그 다음에 향한 곳은 파사바 계곡.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있는 곳이다.


멀리서 보면 정말 버섯처럼 생긴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인데, 군데군데 들어갈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원래 먼 옛날에는 데린구유처럼 바위 안에 구멍을 뚫어 천주교도들이 교회로 이용했던 곳들이다.
세월이 흘러 지진으로 인해 지표 위로 올라오면서 비바람에 노출되게 되고, 풍화작용으로 인해 바위가 깎여나가다 보니 저런 모양이 되었단다.


이런 기묘한 버섯모양이 된건, 바로 바위의 상단부와 하단부의 재질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재질이 다르다보니 풍화작용으로 인해 깎여나가는 정도와 형태도 다르고, 저렇게 기묘한 두 층이 겹친 것이다.
물론 여기에 지진 또한 겹쳐서 지층이 얼키설키 지그재그로 얽혀야 이런 모양이 나오는 거겠지?


가이드 님의 말로는 스머프 작가가 이 곳에 와서 보고는 버섯집에 대한 영감을 얻어갔다고 한다.
뭐, 그럴듯 한데? -ㅅ-a


나름 산책코스(?)가 조성되어 있어서 높은 곳에 올라 한눈에 내려다 보는 것도 가능하다.





중간 중간에 덤으로 찍힌 사람으로 크기 비교를 해보면 그 높이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석류주스를 팔던 아저씨.
당연하지만 관광지는 비싸다 -ㅅ-a;;


다시 버스를 타고.....무슨무슨 계곡으로 이동한다;
이 곳 역시 지형변화에 의해 상당히 독특한 경관이 만들어진 곳이다.


계곡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느끼는 건...."춥다" 정도? -ㅅ-;;;
바람이 엄청난데다가, 계곡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사도 상당히 가팔랐다.
자연스레 샌드보드 생각이 난다...쿨럭;


그리고 지나가면서 본 곳은 웃추히사르.
이 곳도 한 때는 바위산 속에 숨겨진 교회였다는데, 지금은 비둘기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니, 사진 아래쪽의 집은 진짜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저 멀리 보이는 바위산;;


그리고 지나가다 보인 열기구 두 대.
원래 아침에 동틀 무렵에 뜬다고 하는데, 해질무렵에 보이길래 한 장 찍었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는 패키지 여행시 160 유로로 꽤 비싼 가격의 선택관광이지만, 그래도 당연히 이런데 와선 저런거 한 번 타봐야지!

열기구 탑승은 남들 다 하는 시간, 즉 동틀무렵인 내일 아침으로 예정되어 있다. :)


자, 그 다음에 향한 곳은 오늘의 마지막 일정, 카페트 쇼핑이다. -ㅅ-;;;
뭐 패키지 여행이라면 이런 쇼핑 코스는 빠질 수 없다고 하는데;;;


건장한 아저씨 둘이서 카펫을 바닥에 탁탁 털어주고, 한국어를 상당히 유창하게 말씀하시는 분이 우리말로 설명해주신다. 물론 억양은 출생의 비밀을 속일 수 없는지라,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의깊게 집중해야 한다;

뭐, 카페트에 대해 큰 관심도 없을 뿐더러, 매일 청소했던 입장에선 '카페트 = 귀찮은 것' -_-;;;
간혹 무늬가 맘에 드는 것도 있었지만, 성실한 게으름병 환자답게 그냥 덤덤히 보고 넘긴다.


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당연히 숙소!
이 때쯤 되니 너무 귀찮아서 다른 사진은 없고, 로비에 걸려있는 사진 한 장만 찍었다.
나이가 많이 들긴 했지만, 이 아저씨가 아타투르크 대통령!
젊었던 시절의 사진은 상당히 호남형인데, 역시 서구형 핏줄이라 그런지 나이먹으면서 급속히 시드는 미모...-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