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만 펼치면 연일 들려오는 소식중 하나.
배럴당 $100 돌파는 이미 옛날 얘기고, $150돌파, $200돌파까지의 우울한 전망을 연일 쏟아낸다.
이미 생활물가에 악영향을 끼치는데..아니,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격은 올라가고 제공받는 서비스와 제품의 질이 떨어지기에 딱 좋은 핑계가 나온 셈이다.
담합에 열심인 국내 정유사들은 적당한 핑계를 찾아 가격 올리기만 바쁘지, 유가 떨어진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에 걸려도 외면할 뿐이니.

평소에 한 푼 두 푼 간신히 모아 무더운 여름날 바깥 나들이 한 번 하려는 사람에게 역시 큰 타격이다.
성수기에 야금야금 올라가는 비행기 티켓 가격이야 그저 그러려니 하겠는데, 유류할증료라는 어이없는 괴물에 발목잡히게 되어버렸다.
아니, 무슨 티켓 가격이 30만원인데 유류할증료가 16만원이야!!!
덕택에 어울리지 않게도 국제유가 상승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시국토론자 한 명이 탄생해버렸다.

하지만, 기름값이 비싸서 자가용을 못끌고 다니면 BMW를 이용하면 된다.
그럼 비행기가 유류할증료라는 녀석을 등에 업었다면, 배타고 가까운 곳에 가보자...! 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그래서 찾아본 일본까지의 배삯은 약 20만원선.
하지만 이걸로 안심하면 안된다.
유류할증료라는 녀석은 항상 '불포함'항목에서 찾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역시 배도 맹물로 움직이는게 아닌지라, 유류할증료를 내야 한댄다.
그 가격은 무려 16000원.
응? 잠깐, 16만원이 아니고?
다시 한 번 확인해봤지만 1만6천원이 맞댄다.

그렇다면 유류할증료포함 약 45만원의 비행기편과 약 22만원의 배편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셈이다.
돈 많고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라면야 비행기편이 정답이겠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저임금 인력의 입장에선 시간을 더 쓰고 배편으로 갈 수 밖에 없다. -ㅅ-;
그래서, 이번엔 일본에 배타고 한 번 가 봅시다.

여기서 잠깐 추가해야 할 항목이 바로 부산까지의 이동에 필요한 돈과 시간이다.
다행히 아직까진 서울에서 오사카까지 가는 배편이 없으므로, 부산까지는 기차 혹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2MB짜리 계획이 성공하면 바뀔지도 모르겠다)
뭐, 이른바 '중산층'이라면야 부산까지 비행기 타고 가서 배타고 일본에 간다는 -_-;; 방안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저임금 노동자.
기차타고 부산까지 가기로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얌전하게 부산까지 가기는 싫어서, 꼼수를 찾아봤더니 부산까지는 'KTX동반석'이란 걸 이용해서 싸게 이동할 수 있었다.

KTX의 각 차량에는 양 편에 4석씩, 총 8석의 '마주보고 가는 좌석'이 준비되어 있다.
이걸 '동반석 할인'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편도로는 약 3만원 정도, 왕복 약 6만원으로 부산에 다녀올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따져본다면,
A. 비행기 : 티켓 30만 + 유류할증료 15만 + 인천공항 리무진 1만 = 총 46만 + 약 4시간
B. 배 : 티켓20만 + 유류할증료 2만 + KTX 티켓 6만 = 총 28만 + 약 19시간
이라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최종 일정은 서울 -> KTX 부산역 -> 부산항 -> 오사카항 으로 갔다가 역순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선택하기로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일단은 KTX를 타고 부산으로 출발!
의외로 가운데에 접었다 펼 수 있는 탁자도 있어서 여행 자료를 읽거나 할 때는 편했다.
하지만 의자를 뒤로 기울이는게 상당히 제한되어있다는 점은 좀 단점이다.
좁은 차량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우겨넣으려 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만일 KTX동반석에 필요한 인원인 4명을 다 모으지 못했다면, 인터넷에서 KTX 동반석을 함께 이용할 사람을 모집하는 카페에 가입하면 된다.
그나마 가장 큰 곳이 http://www.ktxcarpool.com 이라는 사이트인데, 다음에 있는 카페와 연동된다고 한다.
회원가입할 때 다음 ID를 입력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비밀번호만큼은 반드시 다음과 다른 비밀번호를사용하는 걸 잊으면 안된다. -_-+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약 3시간.
대전까지 한시간만에 가는 걸 보면 정말 빠르다는 실감이 난다.
단, 빨리 가는 건 대구까지고, 대구에서 부산까지는 기존 철도구간이기 때문에 빠르게 달릴 수 없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금새 도착한 부산 KTX역.
그러고보니 그동안 부산에 와본 건 처음이다. -ㅅ-;
와~ 덥다라는 한마디만 말한뒤, 부랴부랴 부산 국제 선박 터미널로 이동해야 한다.
택시를 타고가는 방법도 있지만, 부산 KTX역 바로 옆에서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한다.
버스타고도 5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라 그런지, 택시 운전하시는 분들은 싫어하시는 모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산 국제 선박 터미널은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훨~씬 크기가 작았다.
시설도 뭐...그저 그런 정도였고.
아무리 우리나라가 반도국가라고는 해도, 아직은 배타고 주변 국가에 나갈 일은 많지 않으니까.
사진 너머로 보이는, 창문달린 흰색 벽이 바로 일본까지 태워다 줄 팬스타 드림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서울 터미널보다 좁은 내부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날 단체여행객들이 제법 많았다. -_-;;
뭐, 아무리 선박여행이라고는 해도 개인 손님들만 받아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울테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사카 뿐만 아니라 대마도, 시모노세키 등등으로 떠나는 배 역시 이곳에서 출발한다.
뭐, 당연한건가 -ㅅ-;
사용자 삽입 이미지
티켓을 받고 2층에 올라오면 출국수속을 받기 위해 대기해야 한다.
뒤편에 모여있는 초글링 및 중딩들.
그리고 개인 여행객들은 좀 더 앞에서 미리 기다리게 해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의 출항시간에 따라 출국수속을 시작하기 때문에, 미리 온다고 해도 약간 기다려야 수속을 받을 수 있다.
가방한테 자리를 지키라고 부탁하고,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매우 비싸다!)에 가거나 주변을 돌아다니는 정도는 괜찮다.
그리고 검색대 등을 통과하는 출국수속을 마친다 하더라도, 역시 배에 올라가는 승선시간까지는 제법 시간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서도 한참 기다려야 한다.
출국수속을 마친 상태라면, 승선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면세점을 가도 되고, 시내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품을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
근데..솔직히 부산항 면세점은 부실하다.
뭐 돈 아끼려고 배타고 가는 사람들이 사봤자 얼마나 사겠어~ 라는 계산인걸까.
분하지만 반론할 수 없군 -_-;
...이라지만, 그래도 역시 살 사람은 산다.
시내면세점에서 구입한 물건이 면세범위가 넘었다며 들어올 때 대신 들고와달라는 일행이 있었으니.
사실, 선물용으로 몇가지 사려고 했지만 찾는 물건이 없어서 그냥 안사기로 했다.
(돈이 없어서 못 산게 아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차저차하여 승선하고 배에 올랐다.
여행사에서 준 숙소는 8인실짜리.
보아하니 단체 여행객들은 30인실, 8인실 등에 골고루 들어간 모양이다.
8인실도 그닥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창문하나 없는 방에 그야말로 1cm의 틈조차 남김 없이 매트리스를 깔아야 8장이 간신히 깔리는 좁은 방이다.

게다가 여행사에서 배정하다보니 같은 방을 낯선 사람들과 함께 쓰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떤 아저씨와 그 아들내미가 들어오길래 '안녕하세요!'라면서 인사를 해봤지만.....낯선 놈들은 무시하자는 가풍을 자랑하는 집안인지, 방에 들어올 때 마다 인사해도 예외없이 무시당한다.
아니, 솔직히 호의적인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예의상 인사정도는 받아주면 안되냐! 라는 항의는 무겁게 삼키고, 바깥에 나가보기로 했다.

참, 방에는 '개인 보관함'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들과 방을 같이 쓸 때는 개인 물품을 알아서 잘 챙겨야 하는 수 밖에.
데스크에 물어봤지만 배안에는 개인락커도 없고, 데스크에서 보관해줄 수 있는건 여권이나 지갑류의 작은 물품만 가능하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기보다 싸다고 해서 배 여행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이외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중 하나가 바로 자유롭게 갑판에 올라가 바닷바람과 함께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배가 출발할 때 부터 도착할 때 까지, 일부 갑판이 제한되는 경우는 있으나 항상 밖에 나가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비행기 1등석에서조차 누려볼 수 없는 자유다.
비행기에서라면야 날개에 올라가보기는 커녕, 창문을 열려고 해도 승무원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받게될 게 뻔하지만, 배에서라면야 돌아올 자신만 있다면 바다로 뛰어내려도 된다.
물론, 배가 기다려줄거라는 낙천적인 생각은 접어두고 뛰어내려야 할 듯.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후에 떠난 부산항 주변엔 이런저런 배가 많이 떠다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까이에 오는 배는 없다.
가끔 공항에서 비행기끼리 교통체증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배편은 여유가 많다.
활주로가 필요한 비행기에 비하면 훨씬 간단한 시설만으로도 접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택에 다른 배들을 손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보는 행운까지 누리기는 힘들었다.
대부분 멀찌감치 떨어져서 항해하며, 가까이 올라치면 기적으로 경고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자주 일어나진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아마 구명보트인거 같은데....과연 여기에 몇 명이나 탈 수 있을까 -_-;;
배에 잔뜩 탄 초딩, 중딩들이 너도나도 타겠다고 몰려들다가 이것 마저 가라앉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이 보트보다는 구명조끼나 고무튜브, 혹은 고무보트를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자연히 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가 지고나면 제일 위의 갑판의 출입을 제한한다.
그렇다고해서 밖에 못나가는건 아니니까, 마음만 먹으면 자그만치 바다에서의 일몰과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지런한 사람들의 몫이다.
방에서 (지상파 채널과 OCN, 그리고 일부 일본 채널이 나오는) TV를 보다가 잠들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진 상태다 -ㅅ-;
그나마 잠에서 깨게 된 것도 '이제 곧 XX다리를 통과하게 된다'라는 안내방송 덕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텅빈 바다라고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늘로 눈길을 돌리면 수십억 광년이라는 거리를 여행한 별빛이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반짝이다.
도심지인 서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밤하늘이다.
아쉬운 건, 배자체에서 켜놓은 인공 조명과 그래도 도시 근처때문인지 생각보다는 적은 별들만을 볼 수가 있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록 별들이 점차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다.
다시 앞을 바라보면, 항구도시 전체가 마치 구름을 향해 빛나는 전구처럼 느껴진다.
거리 곳곳에서 규칙적으로 세워진 가로등 불빛과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형광등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마치 빛의 오오라를 어두운 하늘로 쏘아보내고 있다.

산너머에서는 도시보다 한층 밝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는데, 갑판에 줄지어 선 다른 사람들 역시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혹시 이 항구보다 좀 더 큰 도시가 산 뒤에 있는게 아닐까하고 짐작하는 순간, 산뒤로부터 빛무리를 두른 달이 성큼 걸어나온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주연배우의 등장에 갑판에 서있던 관객들은 정신없이 산 편을 구경하기에 바쁜 나머지, 조금 전까지 재잘거림이 가득했던 갑판은 한동안 찬탄만 가득할 뿐이었다.
정말, 배로 오사카에 가기로 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전 여행 일정을 통틀어 최고의 찬사를 받을만한 연출이고 풍경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덕택인지, 머리위를 지나가는 다리를 봐도 그냥 무덤덤할 뿐이다.
뭐, 육지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겠지 -_-;;

여기까지 보고 선실에 들어가 맘편히 잠들었다...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주변을 꽉 메운 중학교 단체가 도저히 잠잘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밤새도록 판치기를 한답시고 쿵쿵대는 소리, 분명히 지도교사의 허락을 받았을리는 없는 벽 너머로 건너오는 담배연기라니...
게다가 새벽2시까지 복도를 뛰어다니며 고함치는 건 역시나 대한민국 중딩이라는, 다른 의미의 감탄을 하게 만들어줬다.

아놔, 올때도 이것들이랑 같은 배를 타고 올텐데....라는 걱정 역시 쉽게 못 잠드는 이유의 하나였다.


Trackbacks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