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가 싸우고 있을 때, 제일 편한 대책은 A랑 B랑 둘 다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양쪽에서 욕먹는 방법인지라, 속 편한 제3자 입장이 아니라면 실제로 써먹는 경우는 많이 없는 대응이기도 하다.

반값 등록금은 절대 찬성하지 않는다.

1. 수능 점수에 전공을 맞추는 대학교 입시
요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오고, 대학교 입시 원서를 쓸 때 쯤이면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입시 상담'이란 걸 한다.
이 입시 상담이 뭐인고 하니, '배치표'라는 걸 바탕으로 이 정도의 성적이면 어느 학교 무슨 과에 갈 수 있으니 여기에 넣어라~ 하는 상담이다.
안타까운 건, 이 과정에서 그 개인의 희망, 목표나 하고 싶은 것이 반영되기 보다는, 대부분 성적이 그 최종 결과를 크게 좌우하게 된다.
심지어는, 소위 말하는 '더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 전혀 관심이 없는 다른 과로 결정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2. 학생들, 대학교에서 공부는 하나?
대학교에서 제일 어이가 없었던 건, 의외로 학교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는 학생들의 수가 꽤 많다는 점이다.
뭐, 나도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_-;;;
수업에 전혀 열의도 없고, 그냥 자리를 채우다 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애초에 자기가 원해서 선택한 전공이 아니라, '점수에 맞춰서', 혹은 '취직이 잘 된다니까' 들어온 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런 경향이 높다.
학생이라는 본분보다는, '대학생'이라는 미묘한 위치를 특권처럼 사용하는 모습이랄까.

3. 대학교 교육이 과연 등록금만큼 가치는 있나?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결과가 함께 오면, 교수 입장에선 난감하다.
강의실에 학생들이 앉아있기는 한데, 기초도 안되어있고, 그렇다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된 학생들이 과반수를 넘기기가 힘들다.
이렇게되면 강의는 점점 하향평준화를 향해 가져가게 될 수 밖에 없다.
'교수평가제'에 대한 악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선택한 전공에 매우 관심이 많은 편이라, 어릴 때 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음 어쨌든. -_-;;;
그런대 대학교에서 가르친다는 내용들이, 중학교 때 혼자 공부했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는 다른 길에 빠져서 다른 딴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수업이라는게 이 정도라는데 실망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정말 쉬운 기초 내용을 3번 반복해서 설명하면서도, 학생들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는 교수님의 모습 역시 기억에 깊게 남았다.

4. 대학교라는 브랜드는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나?
대한민국에서 대학교는 일종의 서열화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학교 나왔다는 이야기가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경우가 흔치 않으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학벌 세탁'을 하는 경우 역시 자주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대학교라는 브랜드를 거의 믿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 학교가 그다지 좋은 학교가 아니니까, 우리 학교 다니는 학생들만 '학교 명성에 걸맞는 이런 대학생활을 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대학교 생활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교', 혹은 '서울 4년제'에 나왔다는 이유로 본인의 자존심을 내세울 뿐, 실력은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보통 나이 많은 분들이 대학교의 '이름값'을 많이 믿는 듯 하다.
이런저런 회사도 많이 다녀보고, 전공 관련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봤는데, 예상외로 '너희 학교 애들 뽑으면 너만큼 일을 하나?'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대답도 오락가락 하다가, 결국 '제가 일 잘한다고 생각하시면 우리학교 사람들 뽑지 마시고요, 못한다고 생각하면 학점으로 정렬해서 뽑으세요~'라고 말하는게 질문하는 쪽을 납득시키는 듯했다.

5. 졸업후에는?
2010년 취업자들 대상으로, '본인이 느끼는 전공과 직업의 일치도'에서 일치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절반이 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수십, 수백만원의 전공서적과 교재들을 구입했지만, 정작 필요했던 건 전공과 관련된 지식이 아니라 '4년제 졸'이라는 딱지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회사에서도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기도 하고.

6.
그렇다고 이 상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로지 '취업하기 위한 대학교'. 그리고 그런 대학교를 서열화하고 보다 나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데 목적을 둔 입시체제, 그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반값 등록금만으로는 절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현재 상태에서 등록금만 반값으로 낮추는 건 이런저런 중간과정을 거쳐, '4년제 학위자의 양산과 대학교 서열화'를 더욱 더 부추길 뿐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어릴 때 부터 충분히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그 과정에서 장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대학교를 통해 학업을 연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걸 줄 수 있는 환경이라면야, 반값 등록금 무조건 찬성이겠지만.
지금의 대학교 교육은 반값 등록금이라고 해도 턱없이 아까울 정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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